4/15 유사문 러시아
Shared on June 12, 2026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반세제적인 국가로 생포가 됐습니다. 그래서 가장 매우 흥미롭게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문화에서 현대 사회에서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우리 같이 식사를 하자고 식사 대정을 하는 것은 비교적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 집으로 식사를 초대한다는 것은 진짜 친구라고 생각을 하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어요. 러시아에서도 실제로 초대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손님들은 굉장히 잘 적대를 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러시아에서도 손님한테 아주 과부할 정도로 적대를 잘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로션은 소겜트 사회가 10년 동안 지금 진행이 됐었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는 항상 할 수가 없는데 식료품, 그냥 우유라던지 빵이라던지 이런 것을 품질하게 내가 보내준다고 할 수가 있는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래
있을 때 많이 사놓죠. 사세계를 합니다. 그래서 거의 암시장이라는 곳에서 비싼 돈을 주고 신경품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그 암시장에서 구해진 신경품을 자기 집 냉장고에다가 자꾸 쟁여놓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의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장기영분이 신경품한테 얼마나 소중한 모습을 만드는 데 신경이 끝나는 상황이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생계를 위해서 보안했던 건데 손님들을 집에 초대해서는 그런 신경품들을 아낌없이 대접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친일한 관계라고 생각을 하면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도 잘 주문하고 그리고 한대방의 가족이라든지 만약 외국을 치면 그 나라에 대한 문화 필요한 분들도 사소하게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을 잘 관심이 많냐면 자기한테 되게 관심을 받아요.
그래서 나는 이런데 너무 좋다라고 비교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에서는 이런데 좋은 민족은 버럭이나 이런 식으로 자기의 성대방을 알아가는 것을 자기를 통닭하는 사람의 유형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이 러시아 사람들이 그러면 가성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돼요. 바로 결혼이죠. 저희 결혼을 할 때는 어떻게 다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서양이다 라고 하면은 어떤 의미지요? 우리나라는 유족 문화를 나타나고 말하죠. 그래서 가구장제를 기본적인 사회의 틀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서구다 서양이다 하면은 어때요? 오 좀 더 개방적일 것 같아요.
이 가부장과 반대되는 문화권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가부장 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가장 아버지의 권위가 상당히 높은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어머니 주부는 가산운동을 한다든지 그리고 집안에 금전관리를 담당한다든지 전통적으로 긍정관리를 일달하는 여성들이 담당하는 여성은 아니었는데 러시아에서는 어머니들이 가정경제를 관리하는 그런 분담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는 그러한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서 여성들도 사회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가 점점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겠죠.
다른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러시아에서도 각오의 소피에트 시달만 해도 1980년대, 70년대, 80년대 하지만 굉장히 이른 나이에 결혼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000년대에 넘어서게 되면서 사회적인 변화가 많이 생기죠. 그래서 결혼 연령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수세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할 때 우리나라하고 차이점이 뭐냐면 시스템에서 약간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 러시아국만 아니라 소련 연방을 하셨던 나라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이런 나라들도 아직도 국가에다가 결혼을 등록하는 제도를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 자x라고 하는 조정이 있어요. 이 작스가 뭐냐면
포장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광봉선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우리는 결혼하려면 뭘 해요? 결혼식장을 일단 예약을 해야 해요. 근데 여기에는 결혼식장을 예약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광봉선, 작스라고 하는 광봉선에서 결혼식을 진행을 하게 되죠. 그리고 지점은 날짜, 날짜도 정해줘요. 이 날짜와 장소를 정해주면
이 기능이 풀무위를 박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은 소련 시절으로부터 지정이 되겠는데 이 소련 시절에는 모든 것이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관공서에다가 우리가 결혼하겠다는 서류를 제출을 하면 날짜에서 혼인 날짜, 그니까 나라에서 혼인 날짜를 배정을 해주는 것이 관리였습니다. 그래서 지정된 날짜에 신랑하고 신부하고 부모님 그리고 증인이 필요해요. 증인 두 명 이렇게 대통을 해서 적은 인원이 다 같이 방문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식당에 가면은 주례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주례 선생님이 모르죠.
신앙신부가 서로 사랑하고 잘 사세요 이런 적당들을 조언을 해주는데 러시아에서는 주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나라로 나오게 되요. 그래서 공무원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고 서로 반지를 교환하는 의식을 치르게 됩니다. 그 절차를 마치면 공무원이 결혼 증명서를 수혈해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굉장히 짧아요. 10%에서 15% 정도 소요가 되는데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결혼의 피로연이 시작된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신랑신부 포함해서 자기 친구들도 초대를 하겠죠. 친구들하고 다 같이 도시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여러분들이 관광을 해서 다르게 되면 유명한 관광지들을 주로 들리게 되는데 관광지를 빠짐없이 볼 수 있는 것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신랑신부와 친구들. 우리들이 굉장히 자주 목격을 할 수가 있죠.
우리나라에도 날짜를 선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풍경 중의 하나인데 여러분들 이사할 때도 부모님들이 아무 날짜를 하는 게 아니라 손 없는 날 이런 것들을 봤어요. 손 없는 날에 이사를 해야지 달 없이 돈을 잘 산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결혼식을 할 때는 같은 숫자가 겹치지 않는 날을 해야 된다라고 이제 선 날짜를 정하는 콘서트들이 있습니다.
그 날짜를 겹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2027년 7월 7일이 되겠다 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그날에는 결혼을 피해서 하는 것이 관례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러시아 사회도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현대 사회에서 크게 상승을 하고 있는 것처럼 러시아도 이혼율이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가 있을 때 그리고 아이가 없을 때 그 경우에 이 절차에서 차이가 나게 되는데 사실 뭐 아이가 없는 부부 같은 경우에는 내 절차는 구청에 가서 이혼 접수를 하면 그대로 신고가 됩니다. 그런데 반면에 아이가 있으면 넣으세요.
그냥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무조건 법원을 통해서만 이혼이 성립이 된다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그래서 이 남한상의 경우엔 대부분은 어머니가 가져가게 되고, 아버지는 자기 수입의 30~50% 정도를 남극기로 지급하는 경우가 주어지게 되고요.
러시아도 우리나라처럼 출산율이 감소하는 추세고 그것도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로 제기합니다. 그래서 출산 장려 캠페인 같은 것을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러분들 맞들려시기 바라는 인형인 여자인형인데
전통적인 인형이에요. 마트로슈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다산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안에 아이들이 많이 들어있죠. 보통 출산자료 캠페인
고맙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고 중요하다는 게 바로'다차'라고 하는'별장'이 있어요. 여러분의'다차'가 뭐냐면'제 2의 집이다''별장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보통 러시아 사람들도 생활 방지인데 대부분'홍화 일을 지는 사람'을 제일 많이 구출을 하죠.
많은 분들이 두 번째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도시 근교에 있는 작은 텃밭이 깔려있는 나무를 만드는 목조가옥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 텃밭이 깔려있어서 주말 농장을 사람들이 운영을 하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이 다차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냐 왜 이렇게 러시아 사람들 결정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어요 없어요? 별로 없죠. 없는 사람이 더 많죠. 러시아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다차를 다 세우고 있습니다. 왜 러시아 사람들은 다 이 다차가 있을까 자 이 다차가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의 퓨트륨에즈 시대였어요. 퓨트륨에즈가 누구에요?
상트 페째로 고르크라고 하는 도시를 만들고 러시아의 서구화를 추진한 벤제이션 이 펜젤대제가 처음에 상트 페째로 고르크로 청도를 했을 때 이 페째로 고르크를 네바강이라고 있어요. 이 페째로 고르크를 가면 가로지르고 있는 그 방입니다. 그래서 이 네바람 주변에다가 별장을 하죠.
전원장택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핀란드간 연안에다가 별장을 화려하게 지어놨어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주변의 토지들을 귀족들한테 화살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토지에 귀족들도 다 별장을 짓고 우리 같이 휴양생활을 즐기자고 인연을 했어요. 이 토지 러시아에서 맨 처음에 아차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말로 나치, 가치 라고 하면은'주다' 라고 하는 인사에요. 그래서 이 나치에서 파생이 되어서'나쳐' 주어진 집이다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거죠. 그래서 이 페트라보로 우리가 나중에 그냥'나 처음으로 했다''수도가 이송했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여자들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그냥 늙지대를 메워 놓고 여기가 이제 순호니까 귀족들한테 여기서 사라 라고 하면 귀족들이 이제 풀썸이 되겠죠. 아무 생활의 인프라도 없고 도시도 바닥도 제대로 닦아져 있지 않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런 도시 페트라보로 처음 생활을 하다보니까
귀족들은 닥쳐에서 여름철을 보내는 관식으로 성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귀족들이 여름에 휴양지로 애용을 하는 집이 됐는데 여러분들은 19세기 러시아 문화 작품들을 보시게 되면 주로 거의 주인공들이 다 귀족이에요. 귀족들이 닥쳐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자주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한 시골 마을에서 귀족들이 양산을 쓰고서 수업을 산책한다고 하면
자기 집이 아니고 자기 영지에 있는 단차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그러다가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상품이 하나가 농노협황입니다. 그래서 페드라데제가 천모를 한 이후에 손벗기는 두 번째로도 추억 이후에 역사적인 상품이 바로 실려야 있었던 농노협황입니다. 농노협황을 했을 때 농노은 어떻게 되었어요? 귀족의 자산으로 빨려 있었어요. 그러다가 농노협황 시플들 중간에 농노협황을 하면서 농노 시플들이 자유화가 되어있는 겁니다.
바로 그때 신분의 질서에 변동이 생기게 되는데 상인이라고 하는 계층이 처음으로 생겨나고 이 상인이 엄청나게 큰 돌을 쌓으면서 하나의 강력한 두통 계층으로 성장을 하게 돼요 근데 내가 농도 출신이었는데 신분 상승을 했어요 그러면은 뭘 해요? 신분 상승을 해서 내가 자본을 받는 거 같다 자본을 이제 그 자본을 올려
문화적으로 모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귀종 문화를, 우리 상위 기침, 새롭게 개선하는 상위 기침 귀종 문화를 모방하려고 해서 그 과정에서 가차들을 많이 사들이게 돼요. 그리고 우리 러시아 가차가 더 퍼질 수 없게 없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철도 관설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시베리아 핵난철도 뭔지 알아요?
티비가 풍면서 본합상도 있었는데 모스크바라고 하는 도시에서 시작해서 블라디 보스톡이라고 하는 동쪽 끝까지 쫙 한 번 이어지는 철도입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북쪽에서 북쪽으로 가로지르는 철도다 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이 철도역들이 거의 사람들이 많이 생활하는 농촌 마을들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 철도를 중심으로 해서 노선을 따라서 도해지역의 단차가 증가하는 현상을 요소할 수 있죠. 그러다가 이 소빛드 시대로 넘어오게 되면
국가에서의 모든 사회의 대선을 몰수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이 단차를 나라에서 프로는 나라에서 구원하는 걸 해요. 다 비워놓고 잊을 수가 없겠죠. 그래서 이 국가에다가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이라든지 당 지도자 혹은 국가를 위해서 공헌한 예술감, 지식인 이런 사람들한테 몰수한 단차를 재범매해주는 현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소비엘트 시대 때 당사는 굉장히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었어요.
많은 소비에트 시민들이 직접 통상으로 배우다가 다차를 만들어서 소비에트 내내 유지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소비에트는 분배, 식량 배급으로 생활이 유지가 되기 때문에 전쟁이 한번 커진다든지 아니면 현재 위기가 낮춘다든지 했을 때 탈력성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식량난이라는 것이 한 번씩 크게 사람들의 생활을 강팔하게 돼요. 자 그때마다 장찬은 사람들이 직접 자극, 자극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 러시아에서 심장난이 심각했을 때가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죠. 그래서 이 시칼린 농부가 사실은 원래는 이 농산물을 판매되어 안되죠. 근데 그 시 근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농산물을 지은 걸 갖다가 파는 문화들이 생겨났습니다. 근데 이 나라에서는 사실은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일부러 무김하는 현상들을 보여주게 되죠. 그래서 어차피 국가를 나서봤자 그것을 해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국가가 해결하지 못했던 식량난이라는 것을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일시적으로 허용을 했던 조치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주로 많이 먹게 되는 것이 뭐냐. 감자 그리고 양배추, 오이, 토마토 이런 것들입니다. 이 파이가 있는 채소들은 우리가 며칠 지나면 실시를 해줘서 먹지 못하죠. 그런데 양배추라든지 감자 같은 이런 시민들은 여러분들이 환경 조절만 잘 안 하세요.
5달씩 상하지 않고 보관이 가능한 식재료들이에요. 그래서 그런 식재료들은 기본이고 남동업까지 했어요. 우유라던지 그리고 러시아의 캡티라고 하는 요거트를 생각하는 요거트 같은 요거트 같은 요거트, 당이 남은 알 이런 것들도 내다가 팔았습니다. 그래서 360년에 통계를 참고를 했었니
러시아의 농지에서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5%밖에 되지 않는 텃밭에서 러시아 전체의 농산물과 우유 생산량이 생산된다고 하고 그리고 심지어 대란비 같은 경우에는 90% 이상이 닭자에서 생산된 것으로 자극차적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소비에트 시대에 다쳐는 사람들의 식량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심리적으로 해방된 역할을 할 수 있는 킬링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소비에트에서는 제가 조금 이따가 말씀드릴 건데 굉장히 비좁은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다 운영을 주듯이 살았어요. 이 도시에서 그러한 확박한 생활을 하다가 거의 다차로 가게 되면은 일단 자연이 있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 단차가 좋았느냐 환경이 불치 않았어요. 왜냐? 거의 상하기도나 난방, 편의시설이 없는 단차들이 대부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러시아가 안 그래도 추운데 난방도 제대로 안되고 정리도 안되고 추구도 안되는데 러시아 시민들은 그래도 항상
주범마다 다차로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아까 이 주범수다라는 것이 이제 가능했던 것들이 좀 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이제 가능한 조건을 가지게 되죠.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옆집 다차를 살고 있는 사람들 또 다른 가족들하고도 좀 격이 없이 어울려서
도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방구 같은 그래서 러시아에서 특히 또 사람들이 자차에 오면서 많이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버섯을 채집하는 일이었어요 버섯은 러시아 사람들한테 그래서 이 숲에는 버섯이 자라 나기가 굉장히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가면 버섯이 다 숲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힘이 상하여 버섯을 따로 돌아다니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제 여자 영화 중에'모스크하는 눈물을 듣지 않는다' 라고 하는 이제 유명한 영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영화에서 소개해 주신 시기 때 젊은 친구들이 단차에 모여가지고 같이 놀면서 인풍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그 영화의 장면이 전형적인 단차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통계로운 사람들의 음식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통계로운 환경을 하면 또 다시 러시아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 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하게 되는데 해밍기가 되면서 여러분들이 그냥 소비에트 정권과 정권이 붕괴한다고 생각하지 실제로는 내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위협감이 엄청납니다. 당장 내가 평생을 의지하던 시스템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고 당장 내일 또 어떤 일이
아찔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가 있었어요. 거의 1880년에서 90년대 사회로 보는데 그때 이 국가 경제가 거의 마비된다 싶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도 아차의 요정물은 시민들이 생성을 유지하는 주요한 공급원이 되겠죠. 그러다가 이제 2000년이 넘어오면서 자원주의 경제가 러시아에도 도입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자차는 이제 더 이상 방에서 어떤지 지위에 따라서 분배를 해주는 그러한 별장이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서 살 수 있는 별장이 됐어요. 그래서 자차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자차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부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속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지금도 이제 러시아에는 올레가비 이런 여러 개층들이 장성주의 이후에 등장을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뭐 숙가라든지 펜젤볼크라든지 밸러쉽 근교에서 호화로운 형식으로 가타를 신축을 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특연 현상 중의 하나가 급여일 오후가 되면 교통정체가 엄청나게 심각해요. 그런데 그게 왜 그러냐면 급여 오후에 되면 시민들 절반 이상이 자기 단차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그...
빠져나가는 차량들의 행동 때문에 금요일에 차들이 많이 죽을 서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그 다음으로 여사 사람들이 즐겨 먹어볼 여가생활 중에 하나가 바로 반향이에요 반향은 다차하고 같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그냥 뚝 떨어져서 다른 데 반향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유를 가냐고 오냐
그냥 사우나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 1월 1일이 될 때 우리는 종을 치죠 그래서 TV에서도 준비를 하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그걸 기념하고 구경하고 이러기도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해가 바뀌는 그 시간 10월 31일 자정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광야에 모여서 같이 목욕을 하고 맥주나 보드카 같은 것들을 마시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그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사진은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이'만야'의 모습이죠. 그래서 정통적으로 러시아의'만야' 같은 경우에는 집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체가 따로 있어요. 그래서 오두막같이 통상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따로 사우스나를 맞은 안물을 해서 아궁이를 만듭니다. 아궁이에다가 불을 펴요. 그리고 통하면 돌을 펴요.
러시아 사람들은 마니아를 애정당하고 넘은 반향을 부르기도 하죠. 마니아는 대부분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근처에다가 만들게 됩니다.
저수지, 강감 이런 데 있죠. 그래서 땀을 흘뻑 흘리게 되면 눈밭에 눈이 많이 내린 거울 같은 경우에는 눈밭이 나가서 불구르거나 그러면 열기가 가라앉겠죠. 그리고 또 수영, 얼음을 깨고 넣어서 수영을 하기도 하는데 그 수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몸이 밤에 돌아오면 또 다시 몸이 밝아져요. 그러면은 이번에는 다시 독한 술을 마시고 이런 식으로 계속 열을 몸에 넣었다, 뺐다면서 자기들의 어떤 추위를 견뎌나가는 이런 방식을 통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냉욕, 온욕, 온욕이라는 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우리 몸에 있던 악귀가 떨어져 나온다고 사람들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건강에도 도움이 되죠? 젊어진다.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진을 보시면 이게 뭐 한 거였어요? 나뭇가지가 된거에요. 이것이 러시아에서 제일 흔한 자작나무 가지를 묶은 겁니다. 자작나무 가지를 꼽았다가 이것들을 묶어서 쓰는 것을 베리크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뭐 하는거에요?
목욕을 하면서 열이 올라올 때 나뭇가지를 가지고 몸을 툭툭툭 오먹을 거에요. 서로 터져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사람이 갑자기 파란색 성장에서 쓰러지거나 갑자기 신나게 먹거나 하는 그런 사고들도 예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반야와 관련된 반야가 중요한 공간이 있는데 반야와 관련된 러시아의 어떤 금기들도, 타구들도 존재하죠. 자, 한가지 대표적인 것이 반야 안에는 절대, 이 코는 두지 말나 라는 금기가 있습니다. 자, 왜요? 러시아가 988년에 종교라는 신앙을 처음으로 수용을 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이교신앙, 자연시대를 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입효적인 믿음에 따르면 이 관야는 부정한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들이, 악령들이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주로 사람들이 이 관야에서 점을 치기도 하고, 그리고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그런 것을 주저압도 하려고 찾아 들어가는 장소 종료를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자정이 지나면 절대 관야에 가서는 안된다, 이런 말도 있었고, 특히 악의적인 여자를 보셨기 위해서는 여자가 밤에 혼자 가면 죽는다, 이런 일들을 계속 듣고 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에는 반열을 물 근처에 지어야 되고 오두막을 따로 지어야 되고 공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죠. 그리고 교회는 시골 쪽으로 빠져야 이런 여권이 주어져요. 그래서 굉장히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사우나를 땡고 하겠기 때문에
도시 미식에 새로운 스타일의 바니아들이 많이 생겨나서 창업시설로 운영이 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아까 전에 전통적인 바니아에서는 뭐였어요? 장작에다 막 불을 냈죠. 했는데 도시에서는 그렇게 운영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기음식의 난로를 사용을 하게 돼요. 아까 전에 전통적인 바니아는 그을음 때문에 우리가 검은 바니아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여기 도시의 바니아에서는 그런 현상이 없기 때문에 여기는 하얀 바니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니아에서 사우나 가고 싶을 때 가기도 하지만 생일 파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중요하게 사업상 파트너하고 비즈니스 미팅을 해야 되는 것 같으면 바니아로 초대를 해서 미팅을 진행을 하기도 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만큼 친교적인 기능을 크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어시화 속상 중에'반야에는 장군이 없다' 이런 속상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거 무슨 뜻이에요? '반야에서는 지위가 없다' 라는 거예요. 이 지위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 도시에서 관약을 하게 되면 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으면 한 3시간 정도 예약을 하면 그 옆에 같이 내면 공룡을 할 수 있는 냉탕도 같이 딸려있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는 식탁 이런 것까지 다 딸려있는 시선들로 구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이 방에서 오그렇게 목욕을 하나 하는 거에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이 집뿐만 아니라 사실은 이 성당도 초기에는 나무로 많이 지었어요. 그리고 이 북러시아 쪽, 여러분들 이 북러시아가 어디냐면 시베리아에 가까운 곳이 있어요.
추운 이 시대로 가시게 되면 상당들이 주로 나무로 지어졌던 모습들을 볼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돌이 사실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목재는 그러한 방면에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후상으로도 통나무 건축이 상당히 유리해서 나무로 지어진 상당들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비부 같은 경우에 들어오서 이 희시섬이라는 희시섬에 있는 성당이 있거든요. 구체적인 건물 성당이라고 하는게 있는데 그곳을 보면 상당히 신이라는 느낌을 좀 받을 수가 있을거에요. 전통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성당의 느낌이 아니라 이 목적 나무로만, 금속가능 없이 나무로만 쌓아올려서 성당에 동수지하고 그리고 이 동이고요. 22개는 입니다. 동이 성당의 지붕이죠. 보통 일광적인 성당 같은 경우에는 한 5개, 나누면 7개.
그리고 모트바에 있는 펠멜린에 있는 성바지리사원에 동이 여러 개입니다. 그래서 그게 표준적인 형태라고 보는데 이 퀸시섬에 있는 목조정단 같은 경우에는 동이 무려 22개나 그래서 되게 기미랑이 약간 다른 한산의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을 또 추구하죠. 그래서 그 키즈섬에 있는 상상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바리 지른들은 다도한절대의 중앙벌 중에 하나가 지구의 봉사를 높게 쌓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문이 쌓이게 되면 무게를 열리지 못하고 무너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붕은 반드시 높은 경사 극한 형태로 쌓아집니다. 그리고 추위를 막기 위해서 창문은 최대한 작게 되는 형태로 집이 지어지게 돼요. 이 안을 보면 어느 정도 풍이었냐 한 5평에서 8평 정도 되는 것이 일반 작죠. 이 8평 정도 되는 공간 안에서 한 가족만 산 것이 아니라 3배까지 여러 개를 거쳐서 대가족이 같이 거주를 하는 구조였어요. 일반 농민들은 8평 정도였고 그리고 분원 같은 경우에는 큰 집은 한 20평 정도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안에는, 이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방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원룸처럼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왜 하나의 공간밖에 없었을까? 러시아에는 난로를 뜯어야 해요. 그래서 이 가운데에 파란 모이죠. 이것이 우리가 펠치카, 펠치카라고 하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난로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방이 있거나, 내부에 벽이 있으면 어떻게 돼요? 온기가 커지는 것이 차단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이 긴 벽에서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이 펠치카가 이즈바의 4분의 1 정도 면적을 차지할 정도로 중간에, 이 집은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여기에서 빵도 먹고, 난로뿐만 아니라 음식도 조리하고, 옷도 만들고, 여러가지 생활 중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펜치카는 사람들이 거의 진흙을 퍼다가 발라면서 쌓는 형태로 만들었고 이게 러시아 사람들한테 펜치카는 상당히 중요해요. 그래서 자기네들의 어떤 과거에 대한 향수, 그런 향수는 향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강제적인 경화, 위로부터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겪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러시아가 서구화가 되면 그것도 어땠어요? 일단 종교 수용을 할 때도 첫 번째 겪었던 민족들에게 강제적인 변화를 했어요. 위로부터 종교가 수용이 됐습니다. 그래서 민족들은 나라에서 종교가 바꿨을 때'믿어라'라고 하니까 강제적으로 개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강제적인 변화를 겪었던 것이 바로 호수가 대제에 큰 배화적. 그때도'너는 러시아 옷을 입지 말아라' 이런 강제성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피의트 정권이 들었을 때도 강제적으로 모든 생활을 다 바꿨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의시에 따라서 바뀌었던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변화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뭔가 과거로 행여가고 싶어하는 그런 본능. 그리고 과거에 대한 향수, 이런 것들이 러시아 사람들의 큰 정서에 한 부분 중에 하나인데 그 정서를 상징하는 것이 과거의 우리 고대부터 살던'페치카' 집에 가운데 놓여있는'페치카'라는 돌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백지카는 문제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불뚝이 없어요. 그래서 연동이 없기 때문에 환기가 잘 안된다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아일은 이즈가을 형태는 찾아볼 수가 없죠. 그래서 시골 마을에 간다던지, 외곽으로 갈 때 가끔씩 이즈가을 모습들을 하게 됩니다.
이래서 이즈가에서 사는 사람들이 18, 19세기, 20세기 토로 오게 되면서 대도시를 조심으로 해서 아파트 전체들이 논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중부 마주가에 넘어가게 되면 20층에 넘어가는 5층 아파트들도 논설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몰려 사는 것으로 생활 방식이 변화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땅은 굉장히 높은데 사실은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그런 땅은 그렇게 크지가 않아요. 그리고 도시의 인구 밀집도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베체르브로크, 머스크바 같은 대도시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단속 호텔 같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소비에트 시대로 넘어가면서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주거 공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볼 수 있는 것이 소비에트의 공동주택입니다. 여러분들 소비에트 사회는 뭘 지갑해요? 집단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주거 문화에도 적용이 되게 됩니다. 여기 소비에트 정권은 귀족들한테 전택들을 다 몰수를 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다 가진 다음에 그 전택을 어떻게 했냐? 개조를 했습니다. 그 전택에는 방이 여러 개 있죠. 방의 한 가족, 그러니까 방 하나로 배정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저택에 엄청나게 여러 가구들이 같이 들어가서 같이 생활을 하는 형식으로 소위에트의 공동주택이 개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이 나무져 있기는 했지만 사실은 이 동기 굉장히 얇아서 옆의 집을 전혀 소금 차단도 안 되고 타생활 도움이 되지 않는 구로로 개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도시로 많이 유입이 되면서 공동주택도 부족해지게 돼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방 하나로 이제 한 방으로 꼬기게 됩니다. 그래서 한 방에 두 방을
방이 아프리아하고 수면이 많았는데 문제는 바로 화장실하고 추억이에요. 화장실은 보통 건물 하나에 딱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비에이터 앞밭에 가면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포경 중에 하나가 벽면, 독도에 벽면의 변기받침이 벽에 쫙 걸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 변기받침은 어두운 가족과 중부가족과 이런 식으로
자기의 손과 자기의 손을 평일을 해서 걸어놓은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부엌하고 화장실은 우리 집안에서도 핵심적인 공간이죠. 이것을 담당하고 무조건 공유해야 된다는 사실 안성난 스트레스에요. 그래서 항상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경우에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여러분들 줄을 서면 어떻게 해요?
짜증나요. 그래서 사소한 다툼들, 말싸움이라는 것들이 소비에드 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냐 하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면 사생활이 없어지게 되겠죠. 자유롭게 없던 말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권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이용하게 되요. 왜냐하면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가 가능해진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고를 하면 우리가 밀고를 하면 내가 어떤 구원에 대한 도상을 주겠다는 식으로 운영이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강치라는 것이 일상관계로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 서비에스 사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여러분들 도스토스키라고 하는 러시아 장사가 있는데, 도스토스키가 사실은 정치범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시베리아가 10년 동안 감옥에 가서 살았었어요. 저희 젊은 시절에 시베리아 감옥을 살면서 사실 정치범하고 표현범은 원래는 분류가 되어야 되는데 그 시베리아 감옥에서는 같이 한 감옥에다가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도스트웹스키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 그리고 여자를 아내를 죽인 살인범 이런 여러 가지 휴학 범죄인들과 같이 한 공간에서 살면서 엄청나게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자 그러면서 자기는 뭐라고 하냐면 그 사람들은 어떤 악마를 모았고 나는 인간 평화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끝도 없이 노력해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이 작가의 어떤 고통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죠. 그래서 인간의 바닥, 인간에게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를 그 바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도스트웹스키는 결국 어떤 시대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감옥 안에서 우아를 경험하고 나와요.
그래서 보아를 하고서 감옥에서 출소를 한 번을 극점으로 해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제어벌, 까르모저스카의 형제들 모든 동편 소설들을 다 쓰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도스토프스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잘 안 한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가 없을 것이고 작가의 어떤 믿음도 그렇게까지 강했을까 하는 생각도 돼요. 어쩌면 그 생활이라는 것이 아우드립이 큰 대문호를 탄생시키기 위한 밑바탕이었다. 그런 거 이해를 할 수가 있죠.
그런데 도스토옙스키가 나중에 감옥에서 나오고 나서 자기의 감옥 생활을 통해 폐골하면서 자정적인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소설의 제목이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소설입니다. 여기서 죽음의 집이 뭐예요? 감옥에 대한 필요겠죠. 거기에서 도스토옙스키가 그 감옥 생활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이었다. 이렇게 외 쓰고 있습니다. 뭐라고 어수파를 생각해요? 나는 10년 동안 결코 한 번도, 단 1분도 나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그 고통스러운 사실을 더욱더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타에서는 항상 감시병의 눈길, 그리고 옥사에서는 200명의 동료들과 함께 있어서 한 번도, 결코 단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 여러분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지만 호동이 필요한 존재예요. 근데 우리가 고립이라는 것과 고동이라는 것은 좀 다르죠. 우리는 여러분들 시험 끝나고 하는 거예요. 친구들 같은 경우 약속을 잡아서 우리 빨리 시험 끝나고 맛있는 거 먹고 놀 자리예요.
그래서 같이 만나서 좀 노력을 하면 한 반나절 정도는 노력을 하죠. 잘가서 집에 간다. 그러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서 고립되어서 다 단절하고 갇혀있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가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도스토에 있는 감옥에서 그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는 환경을 경험을 했던 것이죠. 자 그런데 아마도
작가가 겪었던 이 고통을 소비에트에서 공동생활을 하더니 사람들도 거의 유사하게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소비에트의 주방의 모습인데 여러 개의 화권들이 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동시에 조리를 할 수 있도록 해놨죠.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탁도 놓여 있고 여기에서 빨래도 걸어놓고 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의 배경으로 주방에서의 수다, 진소라든지 대화의 장소로 등장했던 것이죠. 여러분들 지금 보시는 것이
20세기의 소설가인 리하일 불가코프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불가코프라는 사람은 소메트 정권에 반대했던 단체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거장카 마르가리타라고 하는 소설을 쓰는데 그 중에서 에스오메트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들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 아파트에 대해서 묘사를 하는 제목인데 이 국어들을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할게요.
자, 김은하 오늘 한번 해볼까요? 하수리는 안나, 프랑, 채구나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충실한 가정부 방기사에게 마냥 그에게 전화가 오면 10분 후에 돌아올 거라고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흰 장갑을 끼고 있는 정중한 태도의 경찰과 함께 나갔다. 하지만 그는 10분 후에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와 함께 그 경찰관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신앙진이 깊은 아니 사실 그보다는 미신을 잘 믿었던 안기사는 안그래도 당황하고 있는 아르나프란체로 나에게 달려가 이것은 맞술이 분명하며 자신은 누가 그 하수군과 경찰을 끌고 갈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밤에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고 성함했다.
글쎄 어쨌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술이라는 것은 한번 시작되면 무슨 수를 써도 중간시킬 수가 없는 겁니다. 두 번째 하수긴사라진 것은 월요일로 기억된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자 벨로무트가 땅속으로 꺼지듯 사라져버린다. 사실 벨로무트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긴 했다. 수요일 아침 여섯 때와 단없이 차가워서 그를 태우고 직장까지 모셔왔다. 하지만 차는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 모셔오진 않았지만 차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마다 벨로무트의 슬픔과 두려움은 이로 다가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슬픔도 불량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같은 날, 마피사와 함께 별장에서 돌아온 밴납 프랑체브나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더 이상 여식인 벨로무트를 볼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벨로무트 부부와 쓰던 두 방의 두 방이로는 모두 동행이 되어있었다.
이 장의 제목은 철형입니다. 여러분은 반대 현실을 투자하고 만든 장면이에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사라져야 되고 누군가가 집을 찾아가고 데리고 가고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런데 그것을 잠깐은 마술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요? 아무 설립은 없이 누군가 침발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더 이 사회가 그로테스한 것이 무엇이냐? 아무도 그 없어진 사람을
찾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그가 어디 갔는지 묻지 않는다 라는 그러한 사실입니다. 이제 이 집이라는 공간은 삶의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으로 변모를 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 이 소비에이트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여자 사람들의 일상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기능하게 일시되요. 그리고 그 자리에 이제 방이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실 소비에이트 사회에서는 이혼을 굉장히 장려를 많이 했어요. 가정을 일구로 파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
가정이 여러분들 가정이 뭐예요? 하나의 가장 작은 사회죠. 가장 작은 집단입니다. 그래서 이 가정이 하나의 집단이 되게 되면 정권이 하나의 노동자 개인, 개인을 통합시키는데 상해부리는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가정이 없으면 어떡해요? 하나의 개인으로만 남아있게 되죠. 이 개인으로만 남아있으면서
각각 방에 통합되어야 하는 사람이 어떤 소개에 대해 인간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동주택과 근동식당이라는 것도 사실은 여성들을 사방시키자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비롯이 됐는데 여성들을 주변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원 공부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사실 정치적인 외부는 가족들끼리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사는 형태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공성주택은 개인의 인권이 부장받지 못하는 그런 공각 그리고 개인성이 말살되는 공간으로 나게 됩니다. 그래서 집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은 당에 대해서 반대하는 방침의적 희귀가 있을 때 체포가 되는 경험들을 방문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럼 반면에 이 소설에는 똥, 공동주택과 대조되는 다른 집으로 대한 도로자도 등장을 하게 됩니다. 자, 이 집은 무슨 집이냐. 소설에서 너의 주인공이 있는데, 이 주인공이 작가예요. 그런데 이 작가가 어느 날 이제 빠른 방울에서 채권을 하나 찾아요.
그래서 채권이 남겨서 갑자기 흔들리지요. 큰 도시 생기니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뭐냐? 직장을 그만 봅니다. 그리고 집을 한 채 사서 폭채로 된 집을 한 채 사서 그 집에 들어가서 작가로서 단계 석스라고 하는 작품이 아니라 내가 창작하는 예술가로서 나만의 작품을 진필을 하는 그러한 공간에 대한 교사가 되겠죠. 자, 이 그 집에 대한 교사를 우리가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김준, 네, 읽어볼까요?
그리고 큰 가위는 아홉으로서 공연을 했습니다. 아마 14제곱이도는 됐을 겁니다. 그리고 큰 가위는 운동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퇴치가 하고 있었지요. 그가 얼마나 멋진 고피라는 건지 그것도 턱을 알바라켰는데요. 여인은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아침으로 가득 차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형원은 남극적인 공간에 불을 붙였다. 우리 박진을 준비했고, 큰 상에 있는 분이 힘이 다 아침에 잦았다. 부와의 내원과 종류와 입증기가 마지막 은행절을 불렀고, 한창을 벗겨 11살께, 대하치 입고 아래로 퍼보내면, 본인들은 훼치 가입을 없이 베고 감자를 걸었다. 감자에서 기밀으로 올라가고, 원칙한 감자껍질은 화약을 삽봉으로 만들었다.
'그만한 때로만 책장 앞에 주문이 앉아서 '우승 높은 책장 앞에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책 사이에 의지 먼지들을 공료를 받고 냈다' '그만한 명성에 대한 행동을 안으로' '그런데 최선을 쓰며 지침을 그릴 부정이라고' 네, 이것은 가장 일상적인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묘사로 되겠죠 여기에서도'빼찍카노'
바로 소비스 사회의 원체로 된 집, 그리고 내가 자비로웠던 나의 가구의 생활 이런 것에 대한 향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처음에 40년대 50년대 로 들어서게 되면서 조금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들 40년대 50년대 들으면서 산인식의 아파트를 건축을 하게 되어 조금 그냥 귀족들의 주택을 갖다가 쪼개거나
주먹구구식으로 했던 집이 아니라 이때는 본격적으로 부급스러운 아파트를 건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아파트는 무엇이냐고요? 방, 간구, 그리고 고비관용 이러한 사람들만이 여기에 거주를 할 수가 있겠죠. 이 집은 공동주택하고 다르게 이웃들과 구분되는 거주 문단이고 그리고 실내도 상당히 넓은 곳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쁘라도 좋은 보심을 따라서 이런 프로쇼트, 스타일리엔식 아파트들이 건축이 되요. 그래서 볼지면 보면 이런 스타일리엔식 아파트들이 매매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대다수가 호텔로 개조가 됐다든지 혹은 백화점으로 개조가 됐다든지 해서 사용이 되고 있죠.
그 다음으로는 2차 세미네전을 발치로 내면서 또 한 번의 주거 문화에 영향이 생기게 되요. 이 2차 세미네전은 러시아에서는 대주국전쟁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말았는데 이때 러시아가 입은 피해도 컸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물들이 소실이 되게 되어서 주택문제가 성장한 사회문제로 변상이 되죠. 아, 이 전쟁 때문에 집들이 많이 파괴됐으면 이 나라에서는 모를 거에요.
빨리 집을 지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전쟁을 하느라고 돈도 별로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쌍집을 빨리 지는 것이 이 당시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앞에 있는 동물이나 기원의 동물이 똑같이 생겼죠. 성냥각처럼 생겨있는 이 레몬한 상자 같은
아파트들이 그냥 똑같이 많이 건축이 되겠네요. 그런데 이 건축 방식을 보면 패널식 건물이라고 얘기하는데 여러분들 패널식 건물이 뭐냐면 원래는 건축을 할 때 어떻게 하죠? 벽도를 하나씩 쌓아서 짓는 것이 정통적인 건축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벽도를 다 쌓고 있을 시간이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파괴를 하나 만들어요. 콘크리트를 펴가지고 판 콘크리트 패널을 제작한 다음에 건설 현장으로 공반를 합니다. 그리고 건설 현장에서는 레고를 갖다 키우듯이 그 판과 판을 연결해서 각 같은 한 층을 만드는 식으로 도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물의 부분도 하나씩 생산해서 와서 갖다 붙이는 일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이 되겠네요. 평균적으로 한 동물을 건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2주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한 12일, 이 정도가 평범이라고 이료를 하는데 어떤 기업을 하는 경우에는 한 5일만에 한 동물을 완성하기도 했다는 기업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러시아에 가시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아파트 형태가 일반 소량식 프러쉬 조프 아파트라고 보시면 되고 그래도 이 공간 안에는 엄청 넓은 건 아닌데 한 방이 2개, 방이 3개 정도는 팔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일반적인 이 사람의 신의 입장에서는 없죠. 그 전에 공동주택에 살다가 그리고 공동주택에서 못 살면 부동장,
식사, 보험, 일시박사, 비란데스에 살고 있었어요. 노동자들이 그러다가 갑자기 남방지 잘 된다고 눈물이 다 들어오게 하는 개별 앞으로 이주해서 살아라 하고 나라에서 하니까 일상적인 시민들 입장에서는 훨씬 더 생활조건이 나아졌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아파트 외에 이 단차 말고 단차는 좀 더 낮은 개그맨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곳이라면 이 소비에 대해서 좀 더 고위 관련된 걸 이용했던 결정에도 존재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포세지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에 들어서는 훨씬 더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한 달 임대료만 해도 10천만 원이
이런 포티지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차하고 비교를 했을 때 많은 모든 부분들에서 차이가 나게 되는데 다차는 나무로 짓죠. 그런데 포티지 같은 경우는 비싼 최고급의 벽도를 쌓아다가 검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차는 층이 딱 하나에요. 단층 구조인데 포티지는 2~3층을 기본으로 검축이 되죠.
그리고 이 단천은 개방적인 교육과 교육과 잘 되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반면에 폰디지는 자기의 호화스러운 생활, 개인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만든 결장이기 때문에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이 되고 보완이 되는 형태로 건축이 되겠죠.
그리고 이 가차는 항상 공사일을 경험으로 하기 때문에 여가랑 노동이 결합이 되어 있는 형태였죠. 그런데 쿠키지는 어때요? 전혀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냥 신뢰 안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장소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현대, 2000년대 이후로 넘어오게 되면서 이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은 현대식 아파트를 거주를 하게 되요. 여러분들 우리가 집을 볼 때 크기를 볼 때 뭐라고 그러어요? '몇평이에요?' 이렇게 얘기하죠. 우리나라에서는 평수로 크기를 따집니다. 그런데'러시아'는 평수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여기에 방이 몇 개짜리인가 해서 방이 몇 개 딸려 있는가로 아파트의 크기를 구분을 하게 되요. 결국에 소비아트 주택이 표준한 구조들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넓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구당, 한 가구당 몇 개의 정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가가 이 사람들의 지배 개념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방이 하나예요 그러면은 한 가족이 살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방이 두 개예요 라고 하면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이 가능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사고가 이루어지는 거구나.
그래서 공간의 질, 우리가 통역하는 공간의 질이라는 것보다는 분할된 공간의 수가 조금 더 여시아 사람들한테는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제가 이제 혼만둘을 여기 옆에다가 하나 갖다 놨는데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이제 문을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 옆에 화장실 그리고 세면실이 연결되어 있고 그 화장실 앞에 주방이 위치를 하게 돼요. 그래서 이제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화장실 안에 아파트에 보통 세면대랑 경기랑 같이 들어가 있어요. 러시아는 서구, 유럽 나라처럼 세면장과 화장실이 분리가 되어 있는 구조를 따르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 옆에 오른쪽에 보시는 사진 보면 뭐가 있어요? 여기 아파트 같은데 이 아파트에 소파 위에 카펫가 깔려 있어요. 그리고 이 벽에도 뭐가 있어요? 벽에도 카펫가 옆에 붙어있습니다.
이 카펫을 좀 이상한 보시면, 우리가 이런 유명의 카펫을 페르시아 카펫으로 이렇게 얘기해요. 페르시아 카펫으로 들어본 적 있어요. 어머 어머니가 그런 걸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을텐데, 페르시아 시의 어떤 무늬가, 그런 특징으로 하는 보그룹 카펫입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카펫은 사실은 몽골 지역에서 스키타이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짜서 만들던 직물이에요. 스키타이족은 유목의 이동입니다. 그래서 이동을 한다 라는 이야기인데, 이동을 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집도 계속 캠핑가면 텐드 치죠. 텐드를 쳤다 먹었다 하면서 차려주는 사람들이라, 자기들의 텐트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를 해야 되고, 내고 끌고 나면, 이 수레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를 해야 되기 때문에, 이 굉장히 진물이 두껍고, 매늘이 촘촘한 카펫들을 엮어서 이것들을 이제 비산층 쌓듯이 덮는 그런 용도로 쓰기 위해서 만들었던 카펫들인데, 이 직조 기술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아요.
러시아의 귀족들도 이미 16세기, 17세부터 페르시아 카펫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페르시아 카펫은 러시아 귀족들의 인기 때문에 짜르가 여러 공장, 페르시아 공장들을 설립해서 카펫을 많이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카펫을 바깨를 놓은 것은 나는 귀족이다, 나는 이 카펫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외교적인 빛맥이 있다 이런 것을 관계시키는 것 같아요.
러시아는 범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반습이 사실은 제정러시아, 제정러시아라는건 소피에트 전의 러시아가 없어지게 되면서 그의 전통도 시들해졌어요. 그러다가 다시 이 크루시스토프시 아파트로 오게 되면서 이 카펫을 다녀와 품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너무 저렴하고 빠르게 지어졌죠 집이. 그렇기 때문에 난방도 잘 되지 않아서 외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여러분들 외품을 모아라 어깨에다가 유리 같은 데다가 이 뽁뽁이라고 하는 거 붙이라고 하고 벽에서 단열 장식을 하고 들어죠.
그래서 바로 이 카펜트가 그 때 이 아파트에 잔여를 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소유였던 사람들이 이 카펜트를 많이 구하려고 했는데 이때 유럽에 유명했던 공원 공작물은 사실은 눈기가 쇠락한 이유로 눈을 담아서고 그 대신에 페르시아, 이란이죠. 이란족은 유럽에서 이 카펜트를 신상하고
그 스튜렛을 일약속에서 많이 다가가서 사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제 과거의 이야기이고 한 20년? 한 30년 전 사진 보면 이런 게 나오는데 최근 현대식 엄마들은 젊은 세대들은 이런 식의 장집을 하지는 않고 지내고 있죠. 그래서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31분부터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할게요.
배경의 벽화는 성공을 상징하고 장악의 샤넬에는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텐타 장소로 3위일체를 의미한다 배성당 안은 3개의 장소로 2개의 장소로
지성순아
아이고
그리고 서유럽에
라고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초기에 ETF로스 그러니까 이제 본격적인 러시아 제공이 환성되기 전에 주로 이제 비잔틴과 교역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비잔틴하고 교역을 하면서는 이제 향류 그리고 쌀 렛맨 이런 기본적인 이 국물들을 어디에 유입을 했고 그리고 동양한테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바로 차 문화에요. 그리고 또 렛맨이라는 만두 같은 음식도 동양에서 유흥이 된 것으로 보이고
그리고 또 서슬라구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음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슬라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스프 종류의 음식들이 있겠죠. 그리고 로샤의 신문화에서 중요한 것들이 하나가 바로 금식일입니다. 로샤 종류에는 금식일과 비금식일을 나눠지게 되는데
60을 금지하는 기관도 있고, 아예 단식을 해야 하는 기관도 있고, 몇 가지 단계별로 금식의 종류, 레벨이 정해지게 되는데 거의 이거를 정도의 별력을 해봤더니 1년에 한 200일 정도가 크고 작은 금식일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금식들에는 못 먹는 음식들이 대표적으로 뭐가 있어요. 고기, 그리고 나와면서 아주 철저한 금식들은 유제통, 달걀 이런 음식들도 섭취 못해요. 그러면 그 나머지 음식들이 뭐죠? 생선, 그리고 국물, 버섯 이런 것들을 가지고 요리를 한 음식들이 러시아에서는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샤슬링이라는 요리가 들을 것입니다. 샤슬링이라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꼬치에 고기를 바꾸어서 양꼬치 먹는 것처럼 고기를 구워서 먹는 것입니다. 그런 종종은 중앙화시아동의 유목민들이 많이 있었는데 영향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공격적으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러시아의 식탁문화가 큰 변화를 겪어낸 것이 바로 확산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한입 먹고 있는 요새 오늘날의 비트스테이크라던지 그리고 고기튀김같이 유럽에서 많이 먹는 슈니치라는 건데 그것도 러시아의 대화체에 유입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서구화가 되기 전까지 러시아 음식은 상당히 단정한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이제 뱅지카 앞에서 요리를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 불이 너무 세죠? 그래서 요리를 할 때 불조절이 잘 안되면 어떻게 섬세한 요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조리법이 상당히 단순한 편이었는데 18세기 서구화를 거치면서 프랑스 요리사들이 황셀을 중심으로 러시아로 건너오게 되요. 그러면서 다양한 튀김이라든지 다양한 조리법들을 러시아 사람들한테 소개를 해주게 됩니다.
이러다가 다시 소비에드 사회로 들어가게 되면서 답변에 내었던 신문화가 조금 더 단조로워지는 방향으로 축소가 되어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만성적인 식재료 부족에 소비에드 시민들은 항상 시달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러시아 사람들한테 가장 중요한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빵입니다. 제일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에요. 그래서 빵은 모든 컵쯤에 최고이다. 그리고 빵이 식탁에 없으면 식사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고 이런 여러가지 속담들이 전해주는 일입니다. 러시아는 9세기쯤에 미리 처음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그 호밀이 들어왔어요. 그냥 미리 아니라 호밀이 들어와서 그때부터 그 호밀을 가지고서 만들었던 것이 우리가 흑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곡물 빵이에요. 그래서 이 후에 호밀을 재배할 수 밖에 없는데 여러분들
그 윤환생이 건강을 생각하면 뭘 먹으러 그래요? 작곡밥 드시고 호밀 빵 드시고 이런 얘기를 해요. 이긴 밥과 이기는 밤을 막 높이기 때문에 작곡이 너무 좋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뭐 그런 계약은 아니고 이 호밀 자체가 추운 기후에서 굉장히 잘 자랍니다. 그래서 이 생량을 보면 척박한 향에서 쉽게 보급을 할 수 있는 생량이었어요.
그래서 빵을 만들 때 이 호밀빵의 비율이 높을수록 빵 색깔이 짙어진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호밀빵에 이제 멈추는 싸워종이라는 것을 같이 넣게 되요. 그래서 호밀빵을 직접 가면 먹어보면 싸워종이 들어가기 때문에 약간 그냥 빵 맛이 아니라 좀 시큼한 그런 맛이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 그 나중에
러시아 병사들이 전쟁을 할 때, 도욱 전쟁을 할 때 식량이 없으니까 너무 시큼한 맛이 그리워가지고 호밀빵과 장래가 흔하게 먹는 이 스프의 시큼한 맛이 너무 그리워서 포도잎을 따다가 고무소를 뿌려서 그 신맛을 맛봤다 이런 제기라도 보내드려오겠죠.
그런 반면에 흰빵은 꽤 나중에 들어서야 러시아에서 흔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래서 한 20세기 정도 사이를 잡고서 흰빵이 유입이 됐는데 이 흰빵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보통에는 거의 귀족기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일반 민족들은 종교 축일이라든지 아니면 축제날 이런 특별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이 빵이 우리나라에서 밥과 같은 존재라면 이 러시아 사람들한테 국과 같은 존재는 바로 수프에요. 수프라는 단어 자체는 영어죠. 그래서 이것은 사실은 18세기 넘어서 러시아에서 그걸 수프, 수프라고 명칭을 고르게 된거고 그 다음까지는'필리오빠'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자,'필리오빠'가 무슨 뜻이에요?
호룩 호룩 물을 마신다 들이 마신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프 중에서 가장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질병 없는 수프가 바로'쉬' 이라고 하는 수프가 있어요. 이'쉬'는 뭘 갖고 만들었냐?
양배추를 가지고 만든 스프입니다. 그래서 양배추 쉬 중에서도 이 재료가 어떤 것이 들어간느냐에 따라서 거의 60개 정도로 다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로제아 사람들은 이 쉬 를 굉장히 사랑하는데 나중에 로제아의 문학 상품들을 보면 양배추 스프
어린 시절에 러시아 국모가 끓여졌던 양배추 세포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많이 불러일으키는 의식으로 하나의 문화컨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쉬' 같은 경우에는 지금 여기 있는 세포보다 과거에는 훨씬 더 원래는 얼추고 용도가 짙은
형태국으로 수프를 끓였습니다. 그래서 이 수프는 쉬기 만저도 매일 동안 가는 까샤라고 하는데 까샤라고 하는 것은 죽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유 그리고 우유나 물에다가 곡실이 있죠.
국물을 넣고 냄비에다가 막 끓여야 돼요. 그러면 뭐가 돼요? 축이 됩니다. 여러분들 중국 만들기가 엄청 쉽죠?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원래 이 살만 있으면 국물만 가지고서 맘에만 먹을 수 있는 이'가샤'라는 축이 특정적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이'가샤'가 잔칫 때만 먹는 음식이었죠. 약간 상징적인 음식이었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분들은
국수 좀 먹자 이런 말은 무슨 뜻이에요? 빨리 결혼해 이런 의미죠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결혼식에서는 국수가 남자와 여자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상징하는 그런 음식입니다 그래서 이 피아노 같은 데 가시더라도 양식, 양식 국수요리 같은 데서 나오더라도 그것과 결계로 마지막에 조그맣게라도 국수가 펑!
한국 문화에서 국수와 경험의 상체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원래 간단하게 하는 죽도 겸원칙 피로연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음식이에요. 사실 정차는 너무 맛있으니까 사람들이 특별한 나이에는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맨날 맨날 먹자 라고 해서 나중에 나중에는 일상적인 음식으로 커지게 되는 경우에 해당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이것은 신분과도 방문하고 국민들도 즐기듯 음식이고 그리고 항대도 즐기듯이 그런 음식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여러가지 표정이 있다면 어떤 음식을 먹게 되냐면 맨 먼저 에피타이저 자꾸루 숟가락으로 러시아의 상품이 있는데 에피타이저 생각하시면 돼요. 에피타이저에는 그럼 뭐가 나와요? 샐러리, 캐비엄, 오일을 절인 거, 반찬, 피플같이 샐러리 형식으로 에피타이드를 맨 처음으로 먹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숟가락을 가지고 오고, 메인 요리는 고기나 생선 이런 것들도 있고, 후식도 꼭 포함을 해요.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단 후식을 많이 좋아하는데, 총속도라는지 설명이 이제 중요한데 그런 것들을
그래서 현대 음식 문화에서는 거의 서구, 다른 나라들처럼 코스 형식으로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사실 러시아 정보는 아닙니다.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한 사회가 차려 먹고 먹는 문화였어요. 그런데 19세기의 표토레데즈가 소구화를 하게 되면서 프랑스식 코스 요리와 메레데즈는 러시아로 유입이 되었던거에요.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충격적이었어요. 안전적으로 우리는 펼쳐놓고 먹었었는데 갑자기 하인들이 밥을 먹는데 그래서 들고 왔다가 그릇을 빼가고 이런 것들이 엄청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학에서도 언제부터 우리가 하인들이 계속 글을 쓸 엉덩이 했다는 모습을 영어 그로테즈가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그냥 영어가 필요했던 양배추 속도가 기계를 지는다. 이런 시대에 읽어사가 자주 등장을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사진을 보고 있는 게 뭐 같아요? 무슨 주전자 같아요. 식당 같은 거 보면 카페가 끝나가면 물을 잔뜩 차가워가지고 물을 떠다 마시세요 하는 물통같은 걸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러시아는 여기에다가 차를 넣어서 마십니다. 러시아에서 차를 끓여넣는 차 주전자입니다.
그래서 대사모파로 유명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사실은 커피는 서부하고 원래는 차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래서 차 소비량이 한때는 전 세계에서 5위 정도예요. 이를 정도로 보통 일반 러시아 시민이 하루에 4,5살씩 차를 마시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차를 마시냐? 주로 마시는 것이 홍차입니다.
그래서 이 상북바위가 러시아의 전통적인 그림에서도 많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고 손님이 오면 꼭 여기에다가 차에 끓여서 뺀칭하게 해서 이것을 밟아 끓여가지고 대접하는 장면들을 하나 볼 수가 있어요. 밥을 꺼놓으면서 친구 생활을 많이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처럼 티문화라는 것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티브레이크라는 시간들을 일상중에 오후에 가지면서 서로 사정의 예리를 주고받고
이렇게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죠. 자 이제 이것들을 위해 여러분들이 로즈아 음식 중에 어떤거 아세요 라고 먹으실 때 가장 먼저 우리가 떠올리는 음식이 있어요. 뭐죠? 보드카죠. 보드카라고 하는 파출입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캐비어를 떠올리기도 하죠.
보드카 화면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죠? 독한이죠. 엄청나게 독초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러시아는 너무 춥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다 이런 이미지를 하시는 게 생활을 하기도 하고 또한 아면에 케비언은 어때요? 케비언은 철갑 번호 R이죠? 그래서 이게 어떤 철갑사람이 맞잖아요. 약간 우리랑 좀 안 맞는 것 같고 우리 문화관에 대해서 약간 번호다 이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되게 이국적인 나라다 라는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사실 케비언은 철갑사와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은 문화적인
어떤 새로운 역할입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흔하게 흔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진짜 여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다는 걸 궁금하죠. 이 술 같은 경우에는 문화 작품이나 영화, 그림, 이런 데 사실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약간 비슷한 게 술을 결제해서 안 마셔요. 그래서 술을 펴맞아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거의 등장해서 더 중간하게 술을 마시는 인물들은 없습니다. 거의 암콜 중독 수준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오늘의 정신은 1일 만큼까지 여자들에게 술을 마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1988년에 블라디미르 개봉이 원래 자기나라의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이제 폭열하려고 사전관이 찾아왔었는데 우리 이슬람 신부들은
술을 못 마신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열대 블라뉴얼 대본이'술은 러시아인의 기쁨인데 그런 기쁨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을 가지고서도 오래전부터 예술이라는 것은 러시아 사람들과 아주 밀접하게 문화의 한 부분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00 소비아트 시대 때 사시는 술 소비량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됐던 것이 뭐냐면 남자들이 공간 문제뿐만 아니라 공주를 너무 많이 하니까 근무태망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문제를 잘 못해요. 그래서 근무태망, 가정폭력, 사회 문제를 같이 양기를 시키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거의 이 당시에는 4만명 정도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죽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예요. 그래서 나중에 이소베이트 후반부에 고르바초프가 집권을 하고 나서 대대적으로 공주 캠페인을 벌이게 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죠? 사람들이 엄청나게 반발을 하는 그런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었죠. 현재 이 소비아트 시대와 또 지금, 현재 여자리 상황은 또 좀 많이 전하고 되었어요.
최근에 WHO에서 조사를 했더니 나라별로 얼마나 많이 국민들이 술을 마시나 조사를 했더니 러시아 한국인 경우는 1년에 1인당 11m를 마신대요 술을. 그러면 전 세계에서 한 17인 정도 차지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은 얼마나 마시나? 우리나라 사람은 10m를 마신대요. 그럼 별로 차이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한국과 러시아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오히려 한국보다 낮게 추상되어 있는 그런 통계자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시아 같은 경우에는 우리는 집 밖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분야만 있는데 여시아는 가정 안에서 술 소비량이 굉장히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증류를 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증류를 직접 하다 보면 실제 통계자료를 낼 때 잡히지가 않겠죠.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계자료에 추산된 것보다는 실제 통계자료를 양성 더 남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러시아 사람들은 보드카만 마셔요. 어떤 거 먹으세요? 보드카가 사실 굉장히 유명한 소유이 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보드카만 러시아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와인도 많이 마시고, 백주도 많이 마십니다. 특히 맥주 소비량이 굉장히 높아요. 이 보드카 소비 자체는 감소를 많이 하고, 맥주 소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러시아의 생활 방식이 점점 점차적으로 성과되고 있다. 라는 것을 의미하겠죠.
여러분들이 보드카가 러시아가 보드카의 종주국이라고 하지 않고 있는데 사실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영어 나르데르에서 활발하게 보드카가 소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핀란드 이런 주변의 국들을 중심으로 해서 보드카의 수비량이 높기 때문에 이 지역들을 묶어서 우리가 보드카 빌드나 가소, 연도지층을 파티돌해요.
자 그리고 어디 나라들이 다 보드카를 사랑해서 사실은 너무 쉬운 건 아니고 우리나라가 보드카를 맨 처음 만드는 거라는 원조 논쟁이 역사적으로 또 몇 번씩 벌어뒀었습니다. 그런데 주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폴란드하고 벌어졌던 소련 시대에 벌어졌던 논쟁이 있어요.
그래서 소련에서 보드카는 모스크바 러시아보다 우리가 더 먼저 생산했다 이렇게 도발을 했죠. 그래서 소련은 보드카라는 명칭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랬더니 러시아에서 어떻게 했어요? 우리가 본격적으로 보드카 역사를 연구를 해야겠다 라고 해서 몇 년 있다가 보드카 역사를 활용하는 책을 만들어서 출판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보드카는 15세기에 모스크바에서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맨 처음으로 제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술이다 라는 것을 증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폴란드는 어떤 증거, 반박 증거 자료를 제시를 못 했기 때문에 현재 불일한 입장에 놓여있는 상황이 됐죠.
러시아 사람들도 우리처럼 술을 좋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만의 음주 문화라는 것도 형성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도 술을 마실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예의라든지 규칙들이라든지 이런 것이 사회적으로 공유가 되죠.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술을 마실 때 사회적인 관계가 생겨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친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만약에 술을 안 준다. 이것은 예의에 오는다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술을 마실 때 다 같이 어떻게 해요? 건배를 하죠. 그런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건배사를 다 같이 하는 문화가 발달이 되어 있어요. 근데 건배사를 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다 같이 건배사를 합니다. 그래서 맨 처음 첫 번째 사람이 건배사를 하면 잠을 들고 술을 마시고 그다음에 두 번째 사람이 건배사를 하면 또 술을 한잔 마시고 이렇게 건배를 해서 하는데 맨 처음에는 주인이 먼저예요. 첫 번째 건배사를.
그 다음으로 두 번째는 두 번째로 기준이 높은 사람이 건배사를 합니다. 그래서 점점 그 자기에서 기준이 높은 순서대로 건배사를 주고 있는 문화가 있죠. 그리고 친근한 가족과 출자리를 할 때는 꼭 원착을 해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사진의 오른쪽 사진을 보시면 보드카 한 병물관의 모습이에요. 출 종류가 굉장히 많죠. 그래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종인 보드카라고 하면 스탠디르드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 제품 외에도 여러가지 특성에 따라서 많은 보드카들이 생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을 보시는 사진이 보드카를 생산하는 문장의 사진이에요. 보드카 같은 경우에는 호밀을 가지고서 호밀이 주 원료거든요. 그래서 호밀을 가지고서 등료를 만들게 되는데 세 가지가 없다고 여기가 필요한 여부가 없어요.
색이 없죠 투명해요. 그래서 색도 없고 맛도 없고 향기도 없다고 공색, 공미, 물치도 엄격해. 거의 수량은 80도, 40도 제일 낮은데 40도니까 40도에서 80도 정도 됐는데 이때 다른 나라 술도 물론 며칠 사람들은 즐겨서 하긴 하지만 항상 음식적인 장애에서는 보드카를 놓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술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건배를 할 때에도 다른, 매추가구나, 와인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또 건배에서도 보드카를 위주로 어울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러시아에서 보드카라고 하면 '마다'라는 단어를 늘어내려 하고 있어요. '마다'하면'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어떤 단어 끝에'가'라는 단어를 붙이면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지칭할 때 애칭같이'가'를 붙여서 쓰게 돼요.
와가라는 물이라는 단어의 애칭이라는 형태를 변환해서 뭔가 나의 어떤 애정 러시아 사람들의 애정 같은 것이 담겨있는 단어다 라고 할 수가 있죠 자, 예를 들어 사진을 보시는 것은 현재적인 공동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제조를 했던 보드폰의 증명 분식을 보여주고 있죠
자 여러분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로시아의 식재료 중의 하나가 바로 캠니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화그룸 그리고 트러플이라는 세계적인 진리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집인데 마치 이곳을 캠니어가 러시아에서는 되게 흔하고 러시아 사람들은 자주자주 캠니어를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우리가 캠니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캠니어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이크라 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을 합니다. 이크라는 생선의 알을 준비를 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크라 캠니어라고 할 때
이것이 보통 두 가지로 구분이 되겠네요. 여기 첫 번째가 바로 검은색 테비어입니다. 검은색 테비어가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철각장어 알이죠. 철각장어 알이고, 그 다음에 또 붉은 테비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아마 핵즙 같은 데 가서 먹어봤을 거예요. 붉은 알 거예요.
연어알, 송어알, 생선의 알들을 러시아 사람들은 붉은 캐피아라고 이야기해요. 한국에서, 외국에서 캐피아라고 말할 때는 참석산화 아니지만 본터에서는 좀 넓은 의미로 그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송어알, 연어알 이런 것은 별로 가격이 안 밑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도 편하게 섭취합니다.
검은 캐피어 같은 경우는 과거부터도 좀 큰 음식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왕족 혹은 귀족, 태권끼칭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계속해서 남아있겠죠. 그래서 우리가 이 캐피어는 사실은 원래 어디에서 설각 상황을 하냐면 바다하고 강이 합류하는, 만나는 지점이 거의 설각 상황을 허식시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다가 산란기가 되면 물고기를 이동을 하죠. 산란기가 되면 설각 상황은 강 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래서 강 산류에 들어가, 그곳에는 이 설각 상황을 아래에 택을 해서 알은 알대로 채취를 하고, 고기는 상업으로 향해서 고기를 따로 판매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개체수가 너무 포획을 하다보니까 너무 감성한다는 환경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알만 채취하고 다시 방류하는 배가 방식으로도 이용이 되는 거죠.
이 캘비아 중에서도 가장 비싼 캘비아가 뭐냐면 벨로가 캘비아라는 게 있어요. 상어 종류에 따라서 아래 가격이 내려지게 되는데 벨로가 캘비아는 1kg를 구매하는데 러시아 사람의 한 달 월급보다도 더 비싼 금액을 사야지 구매를 할 수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비쌉니다. 그래서 특히 러시아 사람들도 매일 일상적으로 캘비아를 먹지는 못하고 특별한 레스토랑이라든지 특별한 행사라든지 이런 데서만 섭취를 하고 있어요. 캘비아는 어떻게 먹어요?
조리를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먹는 빵이 있죠. 빵 위에다가 크레임 같은 거 발라서 그 위에 한 입처럼 베어서 물어서 먹거나 아니면 러시아 블레인이라고 하는 팬케이크인데 이게 블레인이 뭐냐면 밀가루랑 버터를 반죽을 해가지고 구운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하면 팬케이크 중간 정도를 생각하시면 되는데 거기에 블레인에다가 또 세멸을 올려서 거기에 섭취를 뿌리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0시까지 제가 말씀을 드렸고 이제 오늘도 이야기 한편 되는 것이 러시아 사회의 제도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러시아는 어떤 사회 복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라고 얘기를 할 때
노랄에서 부터 모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말이에요? 태양할 때부터 출생할 때부터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퇴직과 연금 이러한 것까지 나라가 공개하는 공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의문이 되겠죠. 자, 이것이 왜 이렇게 됐냐? 사회주의 시스템이 되어야 되죠. 그래서 사회주의 시제가, 소유트 연방이 공개되는 이유에도 시스템 자체는 잔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꽤 오랫동안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물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장애인이라든지 전쟁으로 정리를 얻은 연금생활자, 그리고 태우군이란 사람들이 주로 혜택을 받는 일상이었어요. 어떤 측으로 사람들의 복지를 책임지냐? 수도를 공짜로 이용하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전기를 무상으로 이용한다든지, 그리고 대중교통비를 면제해드려드렸는지, 이런 식으로 우리 면제 혜택으로 중심이 만들었어요. 즉, 아무 비용이 없이 생활을 유지하는 게 무리가 없다는 의미를 입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적인 비용을 만제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언스 정권에서 사회에서 강력했던 사회의 인프라 중에 가장 튼튼했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바로 유아,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언스 정권에서는 최상위권, 제일 좋은 것들은 아이들에게 주자 라는 슬로건이 유행할 정도로 질이 굉장히 높은 교육을 저렴합니다.
상당히 적은 가격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소비에트 사회의 특징 중에 하나였어요. 왜 이렇게 나라에서는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썼나 하고 보면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사회주의 특유의 결혼관입니다. 렌닌이 이야기를 하기를 평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성해방이 바로 그 중요한 샘플 공포기가 되어진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일을 아무리 가정생활에 재활을 받지 않고 일하려면 뭘 안해야 돼요? 육아와 강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야 돼요. 그래서 여성이 일을 하는데 육아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라에서는 타라소를 아주 세대적으로 운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유문적으로 막걸리, 둘 다 노동자로서 일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형태였고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엄청나게 높았어요. 그래서 어쨌든 정권에서 불안주로 계속 유도를 했겠는데 노동참여율을 높였는데까지는 초록을 했는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켰느냐? 그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게 되죠. 왜냐하면 한실에서는 고리직 그리고 중형 같은 것은 여성이 남성들한테 많이 집중이 됐고 그리고 여성은 거의 남아있는 일들이 있죠? 낮은 논의 받으면서 저희들에 대해서 노동의 강도도 높은 중노동으로 여성 노동력이 많이 집중이 됐습니다. 나랑 연안하고 계세요
대중도등으로만 하다가 집에 와서는 여전히 또 같이 가서는 내가 맡아서 해야 되는 이종 부담을 짓는 그런 구조가 형성이 되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 소비에트는 2년 시장에서 성립하기라는 2년 시장을 내버렸지만 사실은 정권에서 입장에서 보면 되면 여성 노동력까지 투입을 해야지 국가 노동력이 훨씬 더 크게 확충이 될 수가 있었겠죠. 그래서 정치적인 신경권의 그 이면에는 어떤 심리적인 목적까지 작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성노동협회의 한 것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사활에서 육아 인플로를 구축하는데 집중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바로 뭐예요? 소비에트형 인간을 양육하기 위한 엄청나게 효율적인 장소였어요. 자 여러분들 이 아이는 보통 어디에서 키워져요?
가정, 그렇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 혹은 부모님, 이렇게 가정이라는 환경 속에 양육이 자, 형제는 단순히 아이를 잘 키운다가 아니라 국가가 인간을 만들어야 되는 인간성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립하겠다는 어떤 이야기가 되겠죠.
그래서 이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의 방식대로 인재들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타가속, 유치원, 이러한 공적인 공간에서 이 공적인 공간을 확대해서 이 개인이 만들어지는 가정상체를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비에트에서는 어떤 인간을 벌고 드러내고자 했는가?
당연히 당에 충당하고 열심히 영웅이 되는 노동자가 되는 인간들을 길러내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타과 속 인간이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잘 작동을 했기 때문에 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소베트 사회에는 비슷비슷한 인간 유형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체제 하에서 태어나고 양육되고 노동하고 상큼한 사람의 유형을 이야기 하겠죠. 이것을 우리가 소비에트형 인간, 호모소피에티쿠스 이렇게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학자들이 호모소피에티쿠스의 특징이 뭘까 하고 봤더니 몇 가지가 있는데 집단중심적이라는 것이 특징 중 하나죠. 그리고 사회적인 수동성이 또 한 가지 특징입니다. 사회적인 수동성은 무슨 말이에요?
무력한 거예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어떤 주도성을 완전히 내려놓게 되고 나는 전적으로 국가의 백헤드만 의존하는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게 되죠. 의류로 한 것은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적인 역할을 선지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품하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노동자로서 나의 역할을 더 충실한 선택으로 계속되었다 라는 이야기가 되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바로 이종사고라는 특성도 있어요 이종사고는 뭐냐 공적인 장소들에서는 당에 산서를 합니다 그리고 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요 지지 의사를 투명해요 그러한 반면에 사적인 주방 같은 공간에서는 체제를 비판하는 성 반대의 모순을 당원을 하는 것이 대소피에트적인 방향의 특징이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줘요?
인간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성 호기렛트는 사실은 인간을 개척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 인간성이라는 것을 제거하고 이 인간성을 없누르려고 했던 시도죠. 그런데 이 인간성이라는 것이 없눌렸을 때 이것은 왜곡되서 나타날 뿐인지 절대 말살 되지는 않는다 라는 것을 이 체제의 실패가 역사적으로 보여줬던 것이죠. 자, 우리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어떤 풍선 같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 풍선에 공기가 들어있으면 어때요? 풍선이 빵빵해지죠. 그런데 그 풍선을 누르면 어떻게 돼요?
어? 옥기가 다른 쪽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압력이 높아졌을 때 폭발을 하게 돼요. 자, 이 인간 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성성 하나 없던 개인적 욕망이라는 것들은 결코 우리가 제거하거나 없애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한쪽에서 기형적으로 거세됐을 때 다른 쪽에서 그것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자, 고용 말고 그러면 소비에 대해서 의료는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느냐 의료 경험도 당연히 중앙 집중화되고 구조화되겠죠. 그래서 전 국민이 법균적인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나라에서 지원을 하는 식으로 살다가 갑자기 소비스 연방이 다 해체가 됐어요. 그런데 이것을 다 나라에서 책임을 지기에는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으로 작용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두 가지 논의가 생겨나게 되는데 첫 번째가 시장경제론자들이죠. 시장경제론자는 뭐라고 얘기해요? 무상의료를 포기하자, 의료전을 다 운영하자 이런 주장을 합니다. 그런 반면에 정부의 보건방법을 뭐라고 하냐? 안 된다. 우리가 무상의료 원칙을 고수하겠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팽팽하게 맞서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두 가지를 혼합한 절충형 모델로 러시아트하는 세탁을 하게 돼요.
그래서 2005년에 푸틴 대적량이 안되겠다 이러자 사용에 고정된거 너무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했다라고 해서 정면적인 개혁을 방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복지혜택을 지금까지는 제공을 하고 있었는데 이 무료를 없애고 그 단식은 뭐해요? 그냥 지원금을 좀 주겠다 관련 방식으로 전환을 하게 돼요. 그래서 뭐 무료로 대중교통을 쓰고 무료로 약을 먹고 했던 이런 것들이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으로 변화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이 어떤 사회보정제도의 개혁을 극점을 해서 러시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이제 반발이 또 일기도 했었어요. 자기들이 드렸던 그전의 혜택들이 하는 순간에 다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발이 벗었던 책임을 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오늘날까지, 현재까지도 통법상으로는 무료 의료를 기본으로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로제아에 가게 되면 병원에 여러분들이 방문할 일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진료는 무료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실상을 봤더니 약간 사실은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한 것이 현실이에요. 왜냐하면 무료로 되겠으면 돈은 안 되니까 좋은데 문제가 뭐예요?
다 받으려고 하죠. 그래서 줄이 너무 길다는 거예요.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치료를 빨리 받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돈을 더 줄 테니까 나를 빨리 좀 해달라 이렇게 되겠죠. 그래서 병원 안에 병원 내부에도 유료 진도라는 것 자체가 새로 생겨나게 되고 그리고 일부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립병원을 이용하는 인증 시스템으로 지금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라에서 어떤 공동제로 전환을 해서 평등한 기회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놨지만 이 사람들 사이 안에서 평등한 시스템 안에서는 결국은 불평등이 되는 것이 또다시 생겨나고 국가가 평등을 제도화했지만 또다시 그 안에서 시장 논리가 등장을 하고 하는 모습들을 관찰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여사의 상황은 공동성과 자동 논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회의 의뢰뿐만 아니라 전망의 분위기라고
다음으로는 러시아의 학제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데 먼저 시꼴라라고 하는 것이 있고, 김나시엄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시꼴라가 뭐냐? 우리나라에는 12년제죠. 러시아에서는 11년제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김나시엄은 특성화 같은 것이에요. 인문교육을 강화한다든지, 외국 교육을 강화한다든지, 또 테크니컬한 것을 강화합니다.
이만기를 하게 되고 최근에는 러시아 정부에서는 여러 다양한 사회 팍도를 개선을 하면 사람들한테 인여를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게 없어요. 빠져나오겠죠. 외부으로.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한 애국주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문의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이 유효치를 막기 위해서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그리고 사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많이 준비하려고 하는 나라의 움직임을 반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어지고, 중학교, 고등학교 이렇게 연계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러시아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대학이 있는 거예요? 수능형 같은 것을 봅니다. 그래서 수능 시험이 있어서 시험을 보는 분인데, 점수에 따라서 나오는 시간을 하기도 하고, 모스크바에서 제일 좋은 학교가 안고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그리고
피테르브로 대학교 때 두 학교가 있어요. 이 논문 대학교 같은 경우에는 별도로 자체 시험을 치러기도 하는 경우는 있죠. 그래서 러시아의 대학 입학 시스템 중에는 유상 입학 제도라는 것도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수능 시험 같은 것을 보고서 면접하고 단체 평가를 해서 입학을 하긴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합격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많은 학폐를 내고서 입학을 하게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교육이 무료이나 국가에서 대학들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유산교육제도를 따로 신설했다고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예 정원 협화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무료정원, 유료정원 이렇게 나눠서 선발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성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나 그리고 기본적인 대화의 모습과 같은 것들 몇가지를 설명을 드릴게요. 그 다음에 여성사람들은 여러분들은 우리만에서도 제 친구야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아닌 사람들도 있죠.'이게 나 안하네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죠. 러시아 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룩' 이라고 하면'나 가까운 친구를 이야기하고' '나 코믹' 이라고 하면'아는 사람'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진짜 친구 아니면 사회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을 분명하게 공헌하는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슬라프 지역 같은 경우는 서유럽에 비해서 신체접촉에 상당히 반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키스를 하는 문화가 많이 발달이 되어 있는데 러시아말로 키스라고 하면 아젤로이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젤리 라고 하는 형용사에서 파생이 됐는데 이 젤리가 무슨 뜻이냐 완전한 온전한 콜 이런 영어로 하면 콜이라고 얘기하는 그 콜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키스를 했을 때 우리가 온전한 관계가 된다 이런 의미를 가지게 되죠. 그래서 원래 전통적으로는 손님 나랑 친한 사람을 만났을 때 한형의 의미를 키스를 하기도 하고
특히 십자가에 입을 맞추는 전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사회에 오신 사람들을 만나면 악수는 잘 안하고 끌어안는,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는 볼지수를 나누는 행동들을 하게 되는데
보통 볼키스를 할 때는 세 번을 분갈아서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숫자 품이 행운을 맞은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악수는 그냥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직함을 다루어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의미에서 참가 표시를 하는데 악수를 하고
그리고 어떤 일인지 진짜 우애, 인감대 이런 것을 사회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거리감이라는 것, 명시라는 거리에 대한 음식을 보여주는 것이 '도이'와'세이'라는 호칭입니다 여러분들 당신, 옆에 써놓은 글자가'도이'예요
그리고 너 옆에 서는 글자가'뜨이'예요.'뜨이' 이게 뭐냐?'뜨이'라고 하면은 둘 다'유'예요.'유' 둘 다'유'인데 이것을 두 번에 서 씁니다. 그래서'뜨이'라는 것은 나랑 가까운 사람을 지친 때, 친연함을 표현할 때 사용을 하게 돼요.
자 또 우리말의 종치기랑 비슷한거에요. 우리말도 너 당신 있잖아요. 그쵸? 아니요. 우리말이랑 약간 달라요. 우리말 언제 너 쓰고 언제 당신 써요? 이게 따라서. 그쵸? 나보다 나이가 많을 때 나보다 나이가 적을 때 이렇게 구분을 위해서 사용을 합니다. 근데 러시아에서'뜨이'
'너'라는 것은 내가 심리적으로 어떤 거리남을 느끼는가를 사용하게 돼요. 그것을 어디에서 보여주냐? '부모님한테'뜨'이라고 해요. 부모님은 나랑 가장 가까운 공동체에 손톱이 되겠죠. 심리적으로 거리가 좁습니다. 그래서'부모님한테'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또 하나는 바로'하느님한테 기도할 때'뜨'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을 어떤 존중의 대상으로 생각을 한다라기보다도 자기랑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거리감이 굉장히 가깝다는 것을 표현 중 하나죠. 그래서 부모님과 하느님은 거의 러시아 사람들한테 거리감이 없는 존재처럼 생각이 되고 러시아 사람들 대화를 하다보면 부모님이 얘기하다가 갑자기 뜨일하고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찬 사람의 이름은 이름, 부침, 텅 세 가지로 나눠진다고 이야기했죠. 그래서 지난 시간에 설명드렸죠. 그래서 푸드로, 미아일로드치, 동스토에스키라고 하면
이하일의 아들 표도를 부리고 동수탭스키가 지방 이름이라고 인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남성, 여성, 중성이라는 성이 있어요. 그래서 남성의 성.
얘는 기본적으로 남성형이죠. 이걸 여성형으로 바꿔요. 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알파는'아'를 끝에다가 붙이게 됩니다. 자, 그래서 예를 들어서'안나 까레니나' 하죠. 소설 주인공. '안나 까레니나'가 뭐냐면'까레님'의 부인이에요. 그래서 남편의 성이'까레니'인데 거기다'아'를 붙여서 이 여자는 성이'까레니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이름은 뭐해 주세요. '아파' 이름도 있고
남편 이름도 있고 여기에 다 들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인의 성은 뭐예요? 도스토예프스키 스키가 너무 많아요 탈쿠프스키 스키는 다 아야로 바뀌게 돼요 여성 성으로 바뀐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카야 이렇게 여성 성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타이코프스키의 본인의 성은 뭐예요? 타이코프스카야 이렇게 성변화가 되기 되죠 그래서 이 로스업사업만 보면 도대체 이 이름은 언제 써요? 부친은 언제 써요? 헷갈려요 그래서 이 공식적인 관계, 내가 상마랑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든지 사람이랑 대화를 한다든지 하기는 보통 이름하고 부친을
붙여서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스헤스키도"야 도스헤스키도끼야" 이렇게 얘기 안하고 표도로 미할로리지시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고 블러니 블러니 미어리지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자, 이러한 반면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부를 때가 있어요. 공문서에서 내 이름을 표기를 하거나 언론에서 보도를 하는 경우가 있죠. 자, 그럴 때는 이름과 성을 붙여서 사용을 해요. 자, 그러면 어떻게 되죠? 블러니 미어리프스킹 이렇게 되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어느 상황에서 이 이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이름을 다르게 동합을 해서 사용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친한친구 사이에는 뭘 부르냐 그냥 이름만 불러요. 근데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데 친한친구 사이에는 많이 사용하는 것이 또 애칭이라는 것이 사용하고 있어요. 애칭이 뭐냐면 이름마다 애칭이 또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이반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이 이반의 이름은
애칭은 여러개 입니다. 그래서'마니아'라는 애칭도 있고, 아니면'마니가'라고 하는 애칭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바로'오샤' 소설을 읽다 보면,'아 이거 어? 아 이거 소설 담긴 가치를 읽다 보면 처음은 안 좋은 노래인 줄 알았는데, 어? 앞에 나왔으면 될까? 약간 헷갈려요. 어디서는 비침을 했다가 소설도 주문했는데, 성 내로 막, 잠깐 쓰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성설를 읽기 전에 풀 내에, 몸집, 종류를 쭉 다 해놓고, 그래서'아 이게 얘의 성이구나''이게 얘의 이름이구나' 이런 식으로 매치를 읽어 해서, 매치를 해서 읽어야 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서 마무리를 하고 여러분 다음 주에 시험 다 보시고 다음 주에 이어서 수업하도록 하겠습니다.